
2030년까지 전 세계 업무의 30%가 자동화 위협에 노출된다는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의 분석이 나온 지 꽤 됐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숫자가 먼 미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미 저희 회사 인사팀 인원이 조용히 줄었고, 내부에서는 AI 도입 이후 효율화 과정에서 한 명이 정리된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았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나서 저는 처음으로 직무 안정성이라는 걸 진지하게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노동시장 재편, 해고보다 무서운 건 채용 문이 닫히는 것
지금 AI가 일으키는 변화가 왜 실감 나지 않는지 아시나요? 해고당한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누군가를 잘라내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리를 만들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른바 신규 채용 동결, 즉 채용 문을 시멘트로 막아버리는 방식입니다. 국내 주요 IT 기업들의 공개 채용이 사실상 사라지고 있는 현상도 이 맥락에서 봐야 합니다. 시중 은행들은 AI 여신 심사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심사 담당자 수를 절반 이하로 줄였습니다. 여신 심사란 대출을 내줄 수 있는지 심사하는 업무로, 전통적으로 금융 전문 인력이 담당하던 핵심 직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규칙 기반 알고리즘과 머신러닝 모델이 그 판단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머신러닝이란 데이터를 반복 학습하여 스스로 판단 기준을 만들어가는 AI 기술을 말합니다. 글로벌 로펌들에서는 초급 변호사들이 밤새 하던 판례 분석 시간이 AI 도입으로 90%나 줄었다는 사례도 나옵니다. AI가 변호사 직업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 직업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막아버린다는 점이 진짜 위기입니다. 경험을 쌓아야 할 신입과 중간 연차의 자리를 AI가 가져가 버렸으니까요. 실제로 제가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도 약 1년 5개월차의 사원이 AI 도입으로 인해 본인이 담당하던 업무를 서서히 뺏기기 시작했고 결국 최근에 권고사직을 받고 회사를 떠났습니다. 이렇게 실제로 제 주변만 보더라도 AI로 인한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경제 심리학에서는 이런 위기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이유를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으로 설명합니다. 현상 유지 편향이란 인간의 뇌가 변화보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쪽을 본능적으로 선호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합니다. 월급이 나오고 있는 지금, 굳이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려 하지 않는 것이죠. 여기에 가용성 편향(Availability Bias)까지 더해집니다. 가용성 편향이란 내 주변에 피해 사례가 없으면 위험도 없다고 착각하는 인지 오류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변화가 코앞에 있어도 체감하지 못하는 완벽한 마비 상태가 만들어집니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의 분석에 따르면, 자동화 위협에 가장 빠르게 노출되는 업무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출처: McKinsey Global Institute).
- 반복적 문서 작성 및 데이터 입력
- 규칙 기반 심사 및 검토 업무
- 고객 응대 및 정보 안내 업무
- 표준화된 보고서 초안 작성
제가 직접 현장에서 보니 이 목록에 해당하는 업무를 하는 동료들이 가장 먼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고 있었던 일을 AI가 능숙하게 자동으로 그것도 사람보다 신속하게 처리해 버리니 그저 어이없고 멍한 표정으로 AI가 출력하는 업무 내용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불안이 남 이야기가 아니라고 깊게 생각했습니다.
대체 가능성 직종보다 '내 일의 본질'을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기술직은 안전할까요? 저는 현재 생산기술과 전기 설비 관련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AI가 확산되면서 오히려 제 직무의 가치가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현장 설비가 갑자기 멈췄을 때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도면만 본다고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배선 상태, 장비 노후도, 설비 노이즈(Noise), 진동 주파수의 미세한 변화, 작업자의 경험적 감각까지 종합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 설비 노이즈란 기계에서 발생하는 비정상적인 소음이나 전기 신호 간섭을 뜻하며, 초기 고장 징후를 가장 먼저 드러내는 지표 중 하나입니다. AI가 도면 분석과 데이터 예측까지는 할 수 있어도, 갑작스러운 트러블 상황에서 위험을 즉시 통제하고 작업자와 소통하며 복구까지 이어가는 일은 아직 사람 기술자의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AI의 등장으로 현재 기술직 뿐만 아니라 각 직무, 직종의 대체 가능성도 보게 되었지만 저 자신이 하는 일의 본질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하고 있는 기술직의 경우 기술이라는 본질 속에 더욱 갈고닦아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술직의 생존 전략, 기술직이라고 안전하지 않다
하지만 기술직이라고 무조건 안전하다는 착각도 경계해야 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같은 기술직 안에서도 두 부류가 확연히 갈립니다. 고장이 나면 외부 업체를 부르고 끝내는 사람과, 원인을 분석해 재발 방지 매뉴얼을 만들고 시스템 개선까지 연결하는 사람입니다. 전자는 결국 자동화 설비와 AI 진단 시스템에 밀릴 수 있습니다. 후자는 오히려 더 필요한 사람이 됩니다. 이 차이가 바로 대체 가능성(Replaceability)의 핵심입니다. 대체 가능성이란 내 업무를 설명서만 줘도 누군가 바로 대신할 수 있는지 여부로 가늠하는 개념입니다. 자격증 유무가 아니라 판단의 깊이와 문제 해결의 비정형성이 기준이 됩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분석에 따르면, 자동화 대체 확률이 낮은 직무일수록 비정형 문제 해결, 사회적 상호작용, 창의적 판단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고용정보원). 제가 하는 전기 설비 트러블슈팅, 현장 안전 관리, 개선안 설계 같은 업무가 바로 그 영역에 해당합니다. 앞으로 살아남는 사람은 스펙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AI와 역할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반복 계산, 문서 정리, 데이터 집계는 AI에 넘기고, 판단·협상·현장 대응·개선 설계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전기·설비·안전 같은 물리적 현장과 연결된 기술 역량을 계속 쌓을 생각입니다. AI 시대일수록 손으로 해결하고 머리로 판단하는 사람의 가치는 오히려 더 올라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결국 질문은 "내 직업이 뭐냐"가 아닙니다. "내가 하는 일 중 AI가 못하는 핵심이 무엇이냐"가 진짜 질문입니다. 지금 당장 내 업무 목록을 꺼내서 그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답이 선명한 사람은 시대가 어떻게 바뀌어도 필요한 사람으로 남습니다. 저는 그 답을 찾는 과정이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