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할수록 오히려 더 만만하게 보이는 상황, 경험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첫 직장이었던 연구소 회로개발팀에서 정확히 그 상황을 겪었습니다. 시키는 일은 물론이고 시키지 않은 일까지 앞장서서 했는데, 돌아온 건 고마움이 아니라 무시였습니다. 이 글은 그 시절을 버티며 배운 것들을 솔직하게 풀어낸 기록입니다.

열심히 했더니 도리어 얕보는 직장갑질
회로개발팀에 입사했을 당시, 저는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하려고 했습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먼저 찾아보고, 팀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고 웬만한 말은 그냥 넘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팀 대리가 저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업무 피드백처럼 느껴졌지만, 점점 다른 팀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제 능력을 공개적으로 깎아내리는 발언이 반복되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건 단순한 피드백과는 결이 다릅니다. 직장 내 괴롭힘(Workplace Harassment)이란 업무와 무관하게 특정인을 지속적으로 위축시키거나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반복성'과 '의도성'입니다. 한두 번의 날 선 말이 아니라, 패턴처럼 반복되는 행위가 문제의 본질입니다. 그때 제가 느낀 건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었습니다. 출근 자체가 두려워지고, 업무 집중도(Work Engagement)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느꼈습니다. 업무 집중도란 구성원이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활력을 느끼는 심리적 상태를 의미하는데, 저는 그 반대 방향으로 매일 조금씩 소진되고 있었습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수면 장애, 두통, 불안 등 신체 증상을 함께 호소한다고 합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저 역시 그 통계 안에 있었고, 그제서야 이건 참고 버틸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힘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첫 번째 시도
문제를 인식한 뒤 제가 처음 선택한 건 감정적인 대응이 아니었습니다. 팀장에게 직접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감정'이 아니라 '사례'를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발언이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정리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 방식이 효과가 있었냐고요. 단기적으로는 있었습니다. 팀장이 해당 대리와 면담을 진행했고, 잠시 분위기가 바뀌는 변화는 느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몇 주 지나자 비슷한 패턴이 다시 반복되기 시작했거든요.
여기서 제가 배운 건, '힘의 균형(Power Balance)'이라는 개념입니다. 힘의 균형이란 조직 내에서 구성원 간의 영향력과 심리적 우위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유지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균형이 무너질 때, 일방적인 괴롭힘이 구조화됩니다. 관리자 면담만으로는 이 균형을 회복하기 어렵다는 걸 몸으로 확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괴롭힘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직접 "그러시면 안 되죠"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두렵습니다. 거울 앞에서 수십 번 연습하지 않으면 실제로 입이 안 떨어집니다. 부당한 요구를 받았을 때 "이건 제가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는 한 마디를 꺼내는 것, 그게 곧 힘의 균형을 되찾는 출발점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직은 도망이 아니라 선택이다
부서 이동을 시도했지만 조직 구조상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저는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조직이 구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나 여건이 없다면, 개인이 그 안에서 버티는 데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저는 이직을 선택했고, 직무 전환까지 결정했습니다. 회로개발에서 생산기술 직무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당시에는 '내가 결국 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조직이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내린 가장 현실적인 판단이었습니다.
이직을 고려하는 분들이 참고할 만한 체크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관리자에게 상황을 전달했음에도 반복적으로 문제가 재발하는 경우
- 부서 이동 등 환경 변화를 시도했으나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경우
- 신체 증상(두통, 수면 장애 등)이 일상에 영향을 줄 정도로 지속되는 경우
- 가스라이팅(Gaslighting)으로 인해 자신의 판단 기준 자체가 흔들리는 경우
여기서 가스라이팅이란 지속적인 부정과 조롱으로 상대방이 스스로의 인식과 감정을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 조작 행위를 말합니다. 이 상태가 길어지면 "이 정도는 내가 감당해야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러워지는 게 가장 위험한 부분입니다. 제 경험상, 그 생각이 든다면 이미 꽤 깊이 들어와 있는 신호입니다. 가장 먼저 명확히 해둬야 할 게 있습니다.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100% 잘못한 건 괴롭힌 쪽입니다. 이건 당연한 말 같지만, 실제로 당하는 상황에서는 "내가 뭔가 잘못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듭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2019년 7월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제76조의2)은 사용자 및 근로자가 직장 내 지위나 관계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여기서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라는 표현이 핵심으로, 업무 지시처럼 위장된 괴롭힘도 법적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질적인 대처 방법을 순서대로 보면 이렇습니다.
- 구체적인 사례를 기록해두기: 날짜, 장소, 발언 내용, 목격자를 기록
- 상위 관리자 또는 인사팀에 공식 전달하기: 감정이 아니라 사실 중심으로
- 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채널 활용하기: 내부 해결이 어려울 경우
- 환경 변화(부서 이동, 이직)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조직이 구조적으로 해결 불가능한 경우
이 중에서 제가 가장 아쉬워하는 건 첫 번째입니다. 그때 저는 기록을 충분히 남기지 않았습니다. 팀장에게 상황을 전달할 때 머릿속으로만 정리한 내용을 말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문서화된 기록이 있었다면 이후 과정이 훨씬 명확했을 것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인내로 풀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방향을 바꿀 것인가'를 판단하는 게 핵심입니다. 조직이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면, 결국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건 스스로의 선택뿐입니다. 이직이 선택지에 있다면, 그건 도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결정입니다. 지금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이라면, 기록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법률 또는 심리 상담 조언이 아닙니다.